국제정치의 각축장 : (1) 미국은 왜 유네스코를 탈퇴하였나?
http://my-rosylife.tistory.com/41
위 글에 이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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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2017년 10월 12일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유네스코의 최대 분담국(당시 22%, 1위)이었던 만큼, 그 결정이 미치는 파장은 컸다. 당장 우리 피부에 와닿는 영향은 바로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여부였다.
한국, 중국을 포함 8개국 14개 민간단체로 구성된 국제연대위원회는 위안부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강력히 반대했고,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탈퇴로 분담국 2위였던 일본(당시 9.6%)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우리에게 매우 불안한 요소였다. 게다가 등재여부가 결정되기 전 일본이 분담금을 아직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압박이 더욱 가능한 상황이었다.
위안부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면 일본도 유네스코를 탈퇴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져 나왔고,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사실 2015년에 중국이 단독으로 등재를 신청했다가 이후에 2017년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국가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힘을 모아 여기까지 왔다. 위안부 기록물은 총 2천 744건에 달하는 피해자 증언과 자료들을 종합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하고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되었다. 2017년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관련국 간 이견이 있으면 대화와 합의를 이룰 때까지 심사를 보류한다는 새 규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결국 이번에는 등재가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대 4년간 심사가 보류되었지만, 아직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불발이 아니라 보류라고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도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물을 보존하고, 목소리를 내야 함은 지당한 일이다.
더 나아가 등재여부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잊지 않고 자주 기억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날이나 행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주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기록물 보존(保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등재 보류가 이 기록물의 세계적 중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며 다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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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 편을 추천드립니다. 꼭 한번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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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에서는 ① 세계유산, ② 인류무형문화유산, ③ 세계기록유산을 구분하여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③ 세계기록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등재되어 있을까?
이번에 위안부 기록물과 같이 등재를 신청한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번에 3건이 추가로 등재되면서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은 16건이 되었다.
추가 등재된 기록물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일본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12회에 걸쳐- 조선국에서 일본국으로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단에 관한 자료를 총칭한다.
조선통신사는 16세기 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국을 침략한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양국의 평화적인 관계구축 및 유지에 크게 공헌했다.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은 외교기록, 여정기록, 문화교류의 기록으로 구성된 종합자산이다.
이 기록에는 비참한 전쟁을 경험한 양국이 평화로운 시대를 구축하고 유지해 가는 방법과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양국의 역사적 경험으로 증명된 평화적ㆍ지적 유산으로, 항구적인 평화공존관계와 타문화 존중을 지향해야 할 인류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현저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다.
■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간단히 어보는 도장, 어책은 교훈이 담긴 책을 말한다.
조선왕조는 왕위가 세습되었다. 국왕의 자리를 이을 아들이나 손자 (또는 승계자)는 왕위에 오르기 위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때 '어보와 어책'은 절차에 쓰였던 물건들로, 왕위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징표와 같았다. 그래서 현재의 왕에게는 정통성을 주는 동시에 사후에는 권위를 보장하는 신성성을 부여하는 성물(聖物)로 숭배되었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는 왕살의 정치적 안정성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책보(冊寶)는 조선 건국 초부터 근대까지 570여 년 동안 제작되고 봉헌되었는데, 이런 사례는 인류문화사에서 매우 독특하다 하여 가치가 높은 기록문화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내용, 문장의 형식, 글씨체, 재료와 장식 등에서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대한제국에서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총 2470건의 수기기록물, 일본 정부 기록물, 당시 실황을 전한 언론기록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에 엄청난 규모의 빚을 지워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의 약 25%가 외채를 갚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신문과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알려지면서, 외채로 시달리는 다른 국가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그 후 중국(1909년), 맥시코(1938년), 베트남(1945년)등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여러 국가에서도 대한제국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대한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으며, 긴 기간동안 많은 백성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또한 당대의 역사적 기록물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써의 가치가 크다.
그로부터 90년 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한국에서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하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국가 부도의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은 본인의 금반지를 기부하는 국민적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을 재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가적 위기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대응했던 역사적 기록물이다.
위와 같이 이번에 등재된 3건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인해 한국은 기존의 세계기록유산 13건과 함께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는 한국이 기록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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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세계기록유산 : 총 16개 (2018년 기준)
▲훈민정음(1997), ▲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2011년), ▲5ㆍ18 관련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기록물(2013년), ▲한국의 유교책판(2015년),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15년),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2017년),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2017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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