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충칭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국빈 방문 나흘째였습니다.
칭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충칭 연화지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늘은 文대통령 충칭 방문 의의를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은 언제인가요?
1945년 8월 15일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언제인가요?
.
.
.
.
.
.
.
.
.
.
.
.
.
.
이 부분은 저마다 대답이 다르셨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절 논쟁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절 논쟁은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하자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06년입니다.
2006년 7월,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부)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기고하였고, 그로 인해 처음 공론화되었습니다.
2007년 9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내용을 담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같아 지금까지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이 중요시되었고,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의 의미는 축소되어 왔기에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08년 9월,
논쟁이 격심해지자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철회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개천절, 1919년도, 1945년 8.15 등 건국일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있고, 저마다의 논리와 견해가 있지만 핵심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차이입니다.
1948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 이다. 만약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임시정부는 건국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합니다
반면 1919년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시초로 보는 사람들의 견해는 “임시정부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연결고리’를 끊어 친일파 복권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다름아닌 임시정부에 있으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전 정부(박근혜 전대통령)은 1948년을 지지했습니다.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밝힌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 당시에 이 발언은 일부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충칭을 방문하여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이고 대한민국의 법통”이라며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건국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건국 100주년이 되도록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제대로 기념하고 기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국내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 노력 등을 약속했습니다.
1919년 상하이에 설립된 임시정부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중국 각지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 4월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 충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임시정부가 충칭에 머문 6년은 중국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기간 중 가장 중요하고 활발했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1990년대 초에 충칭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한국과 중국 정부의 공동 노력으로 보존되어 1995년 8월 11일 정식으로 복원 및 개관하였습니다. 현재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사적지 중 규모가 가장 큰 전시관이며 독립열사와 광복군의 사진과 유물, 영상자료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방문이 의미있었던 것은
특히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과 관련해 “그동안 양국 관계가 좀 주춤하면서 (복원작업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못했다”며 중국 측에 전달했고, 시 주석도 이에 같은 의견으로 회답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천민얼(陈敏尔)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을 갖고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 사업’ 재개에 합의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그간 충칭시 정부가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 관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신데 대해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습니다. 이어 “충칭은 역사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그런 대단히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한-충칭 간 경제협력의 확대를 위해 한국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천민얼 서기는 “이번 중국 방문 기간에 특별히 우리 충칭시를 방문해 주신데 대해 뜨거운 환영의 말씀드린다”고 인사하고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적 관계, 우리 사이의 공동적 우정하고 기억할 만한 옛날의 일도 기념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도 우리 사이의 실무적 협력을 강화할 수가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충칭은 중국에게도 역사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곳입니다. 충칭은 일제에 의해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로, 중일전쟁 당시인 1938년 2월부터 1943년 8월까지 충칭과 인근 지역에 1만1천500개의 폭탄투하 때문에 전쟁 피해자들이 지금도 피해보상을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과 역사적으로 연대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충칭은 중국 서부의 요충지이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역점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충칭과 협력할 경우 중국의 중서부 개발과정에서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접했을 때 ‘역사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역사 의식’만큼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사건들이 옛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더 나아가 미래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더 알게되지 않을까요?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 소소한 일상 기록의 시작 (0) | 2020.03.24 |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_기념품 사기 좋은 곳, 그랜드 인도네시아, ALUN ALUN (0) | 2020.03.22 |
[가정의 달] 어린이날은 언제부터? (0) | 2018.05.05 |
2월 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0) | 2018.02.15 |
잃어버린 우리 문화, 漢字 (0) | 2018.02.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