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정보 }
- 영화명 : Life of Pi
- 감독 : 리안 (Ang Lee)
- 개봉일 : 2013.01.01
- 재개봉일 : 2018.04.12
- 러닝타임 : 127분
** 본 포스팅은 줄거리 및 개인적인 해석이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 **
영화의 줄거리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인도인 파이 파텔이 캐나다 작가에게 오래전 자신이 경험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파이'라는 인물은 인도에서 나고 자랐고, 본인의 이름이 발음 때문에 놀림을 받아 그 이름 대신 '파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은 이야기, 다양한 종교를 접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기억 등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어린시절 파이는 종교적 믿음으로 충만한 아이었습니다. 다수의 종교를 믿었고,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을 운영했는데, 그곳에 있는 벵골호랑이에게 맨손으로 먹이를 주려다가 손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아버지는 파이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벵골호랑이가 맹수로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직접 보여줍니다.
그러다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동물원이 어려움에 처하자 파이 가족은 캐나다행을 결정합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동물들을 모두 싣고 일본 화물선에 탄 파이 가족. 그러나 곧 폭풍에 배는 난파되고 파이만 살아남습니다.
파이는 가까스로 구명선에 탔는데, 그곳에는 얼룩말 / 오랑우탄 / 하이에나 /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호랑이도 함께 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곧 약육강식으로 파이와 벵골호랑이만 남게 됩니다. 졸지에 가족을 모두 잃고 벵골호랑이와 바다를 표류하며 생존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파이는 리차드 파커(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구명선에 연결한 튜브에서 지내며 생존 지침서를 숙독합니다. 리차드 파커가 잠들었을 때에만 배에 올라 비상식량을 공수하고, 그를 멀이기 위해 낚시도 하고,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일기도 쓰고 신께 기도합니다. 공생하기 위해 파이는 호각소리를 신호로 리차드 파커를 계속 조련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그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리차드 파커를 조련하고, 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긴장감 속에서 그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존해 나갑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그들은 어느 기이한 섬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낮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좋아보였던 그 섬이, 밤에는 식인섬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되고 다시 표류에 나섭니다.
그러다 멕시코 해안에 도착해 파이는 구출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숲으로 사라진 리차드 파커를 보며 파이는 그 야속함에 하염없이 눈믈을 흘립니다.
이후 일본 보험사 직원들은 사고의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파이를 찾습니다. 파이는 벵골호랑이와 표류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들려주었으나 직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들려줍니다.
그 배 안에 동물들은 없었고,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말합니다. 얼룩말은 다리를 다친 불교신자, 하이에나는 비열한 주방장, 오랑우탄은 파이의 어머니, 그리고 벵골호랑이 리차드 파커가 바로 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파이는 묻습니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지.
해석 및 개인적인 견해
영화에서 파이가 들려준 두 개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 이야기, 즉 동물들은 없었고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사실이고, 동물 이야기는 파이가 지어내거나 비유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우선 왜 그런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 you must be thirsty. "
어릴적 파이가 형과 내기를 해서 성당에 들어가 성수를 몰래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신부님은 파이를 혼내지 않고, "you must be thirsty. 목이 말랐나 보구나." 하며 물을 건넵니다. 여기서 이 대목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매우 중요한 문장입니다.
사실 thirsty는 벵골호랑이의 원래 이름이었습니다. 호랑이의 이름(=thirsty, 목마름)과 사냥꾼의 이름(=리처드 파커)가 서류상의 실수로 뒤바뀌어, 호랑이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가 된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보면 you must be thirsty는 두가지 의미가 될 수 있죠.
"목이 말랐나 보구나 / 네가 thirsty(=벵골호랑이) 구나."
2. 장르적 관습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극 (영화, 연극)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장르적 관습(Convention)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로맨스 드라마에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백혈병에 걸린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보니 남매였다거나, 혹은 호러 영화에서 귀신이 나오는 모든 것이 관습이며, 장르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예전 서부영화를 한 번 떠올려볼까요?
서부영화를 제대로 못 본 세대라 하더라도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들판에서의 대결신 구도는 한번쯤은 보신 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석양에 돌아오다>의 삼각 대결신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영화를 통해 재연되는데요, 이 외 영화에서도 서부극의 관습이 조금씩 변형되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서부극 사례 : 장르적 관습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 by 최광희님 글 참고
이를 바탕으로 한 번 영화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표류를 했다'는 이야기보다 '사람끼리 표류를 했다'는 이야기에 더 익숙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인거죠. 이런 장르적 관습때문에 좀 더 익숙한 이야기가 진실, 사실일거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간에 있었던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견뎌내기 어려워 첫번째 이야기를 지어냈구나.'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촬영기법
카메라 촬영기법도 한 몫 했습니다. 분명 파이는 두 가지 이야기 모두 고백하듯이 말을 하지만, '고백 장면'에 사용된 촬영기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를 할 때 파이는 '고백'이라기 보다는 '대화'를 하듯이, 편안한 장소에서 비교적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합니다. 파이 뒤에 보이는 장소가 흔한 집 배경이며, 카메라도 거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파이가 첫번째 이야기(=동물들)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두번째 이야기(=사람들)를 들려줄 때는, 흰색 배경에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서 나지막이 있었던 이야기를 '고백' 합니다. 카메라도 점점 줌 인 기법* 으로 파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효과를 냈습니다.
* Zoom in : 위치는 고정, 초점거리 조절로 피사체에 접근하여 가는 것
분명 두 상황 모두 파이는 눈물을 흘렸는데, 두번째 이야기(=사람들)를 들려줄 때 좀 더 파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기법이었습니다.
-------
리처드 파커 회상 장면에서도 영화 끝부분에 리처드 파커(=호랑이)가 회상하는 장면에서 파이와 얼굴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버랩(overlap) : 앞의 장면이 서서히 사라져가며 겹쳐서 다음 장면을 서서히 나오게 하여 점차 완전히 다음 장면이 되게 하는 기법
오버랩되는 이 장면을 통해 '리차드 파커(호랑이) = 파이' 라는 인상을 받게 되죠.
4. 식인섬의 형상 (기타 의견)
이 부분은 다른 분들의 의견을 참고한 것인데, 식인섬의 형상도 두번째 이야기(=사람들)가 사실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근거가 됩니다. 영화 초반에 비슈누 신 (Vishnu, 神)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슈누 신은 힌두교의 신으로 가장 자비로운 신으로 여겨져 세상이 혼돈에 빠지고 악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세상을 보호, 유지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힌두교에는 창조, 유지, 파괴의 우주적 기본 기능으로 창조자 브라흐마(Brahma), 유지자 비슈누(Vishnu), 파괴자 시바(Shiva) 신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식인섬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인데, 비슈누 신이 여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슈누 신이 누워있다는 것은 잠들었음을 의미하고, 이 때 파괴의 시바신이 활동할 수 있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가졌다는 해석입니다.
즉, 파괴/죽음의 신인 시바신이 활동했음이 바로 식인이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근거로 해석하셨는데, 이 부분은 종교적 지식 배경이 없었다면 정말 몰랐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명확하게 언급이 되지 않는 만큼, 진실은 믿는 사람의 몫임을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파이가 마지막에 어떤 이야기를 더 '선호' 하는지를 묻는 이유가 바로 여러분의 판단에 맡김을 의미합니다.
" which story do you prefer? "
이야기의 힘
명작인 만큼 영화에 대한 해석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저마다의 해석이 다 달랐는데요, 저도 보고 느꼈던 개인적인 견해를 써보려고 합니다 : )
우리가 경험을 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때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얼마나 진실과 가깝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개인의 배경, 성향, 인식, 지식, 관점, 가치관 등에 의해 그 경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비유하는 {컵에 물이 반이 차 있을 때, 이것을 반이나 남았는지 반 밖에 남지 않았는지를 인식하는 것} 이 그 예시죠.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진실' 보다도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는지에 따라서 내가 기억하고 말하는 '사실'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해보겠습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 혹은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는 말이고,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례를 통해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A라는 회사와 B라는 회사는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법적으로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A라는 회사는 B라는 회사 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거짓 보도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에 굉장히 분개하고 B회사에 실망하여 불매운동을 일으킵니다. 억울한 B회사는 소송을 걸고, 결국 A회사의 거짓 유포였다는 '진실'이 밝혀지게 되죠. 그렇다면 A회사는 왜 이런 막대한 배상금, 거짓 유포라는 이미지를 안고서라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요? 때때로 사람들은 '진실'보다도 충격적 '사실'을 통해 받은 이미지를 오래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B회사의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B회사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은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시는 그림을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 그림 : https://blog.naver.com/dlwnsrms89 에서 참고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은 편집될 수 있고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고,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에 인식하고 있는 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영화에서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 이야기를 더 '선호', 즉 '사실'로 믿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선호하고 선택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고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저마다 받아들이고 깨닫는게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
그것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두 개의 '이야기' 입니다.
조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다보면 주변에서 애정어린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 누구도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도 없으며 추천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살아야 해.' 라는 조언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항상 맞다고도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삶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으니 조언을 참고삼아 오롯이 나다운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죠.
한 편의 영화로 참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쯤은 보실만한 영화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 !!!
끝으로 영상미가 넘쳤던 장면들을 소개하고 글 마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정보] NEW 텝스(TEPS) vs 아이엘츠(IELTS) 비교 ! (0) | 2018.06.07 |
---|---|
RFID :: 익숙해질 용어 (0) | 2018.05.25 |
수영 :: 영법의 유형 (0) | 2018.05.23 |
향수/아닉구딸 릴오떼 :: 제주의 향을 담다 (0) | 2018.05.23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 소소한 재미 (0) | 2018.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