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수많은 명강의와 책과 명언이 있지만,
말과 글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순 있어도
감정의 깊이와 인내의 시간을 채 표현하지 못한다.
간접적인 경험으로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소한 삶의 이치라 할지라도
결국 본인의 몸으로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고 느껴야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의 기적에 대해서도
살면서 수도 없이 들었고
그렇게 마음먹어보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내 감사보다는 부족함에 목매었다.
감사하며 살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던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내가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해서
갖지 못한 것에 불평불만을 하다 보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생각조차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것이 사라졌을 때
그것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상실로 인한 불편함과 불편감을 느낄 때
비로소 지나간 감사함을 느끼곤 했다.
한 일례로
몸에 어디가 한 군데만 조금 아파도
온종일 그것만 신경이 쓰인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통증이 사라지면
더 이상 그 통증이 없는 것에 대해
매일 상기하지 않는다.
감사하며 지내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것에 대한 불편감에 빠져들곤 했다.
행복하다 느낄 때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일일이 감사하진 않았다. 그러질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은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이르다.
다만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여행하는 기분과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설렘도 있지만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누렸던 것들에 대해서 떠올리며
뒤늦게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가족들과 보내는 소소한 일상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
사계절, 아침 오후, 언제 가도 좋은 궁궐
깨끗한 물, 근처 자주 가던 맛집, 편리한 대중교통...
내가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이
머릿속에 끝없이 떠오른다.
또 지금은
일상에서 누렸던 많은 것들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예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자꾸 보게 된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크고 작은 행복감을 느꼈었는지를
하지 못하게 되니, 잃어보니
이제서야 또 뒤늦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리고 있는 것들도 물론 많다.
감사한 것들을 인지하고,
뒤늦은 감사함이 아니라
현재의 감사함을 표현해보기 위해
예전에 받아놓고 써본 적 없었던 감사노트를 꺼냈다.
노트를 쓰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전보다는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의 봄.
한 줄 한 줄 채워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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